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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의 차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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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의 차이

k지니 2021. 6. 27. 08:53

칸트는 "미적인 것을 판정할 때에 미적 판단력은 자유롭게 유희하는 상상력을 오성과 관련지어 오성의 개념들 일반과 부합하도록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을 숭고하다고 판정할 때는 똑같은 능력(상상력)은 이성과 관련하여 그 이념들과 주관적으로 합치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일정한 이념들이 감정에 영향을 미쳐 일으키게 되는 그런 마음의 정조에 맞고 그와 화합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의 정조를 만들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칸트는 미와 숭고는 차이가 있으며, 미적인 쾌락과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숭고의 쾌락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하였다. 더불어 무한한 것을 상상력이 파악할 수 없는 불쾌가 이성의 관여를 통해 쾌로 전환되지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성은 상상력에 규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적 판단은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이며 따라서 오성의 보편적 범주 내에 포괄되어 규정되지 않으며 다만 상상력과의 합목적적 형식의 조화에 의해 보편이 발견되는 판단이다. 미적 판단은 주어진 표상과 관련한 주관의 인식 능력들과의 관계의 문제이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칸트는 그러한 감정의 동요와 경탄의 부정적 쾌의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미적인 감정)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촉진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매력이나 유희하는 상상력과 합일할 수 있지만, 저것(숭고의 감정)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생기는 쾌이다. 곧, 이 쾌는 생명력들이 일순간 저지되어 있다가 곧장 뒤이어 한층 더 강화되어 범람하는 감정에 의해 산출되는 것으로, 숭고한 것에서의 만족은 긍정적인 쾌가 아니라, 오히려 경탄 내지는 존경을 함유하며, 다시 말해 부정적 쾌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부정적 쾌에 의해 불러일으켜 지는 존경과 경탄은 대상에 대한 것이지만, 대상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주관 내에서의 상상력과 이성 간의 상쟁과 조화 속에서 일깨워지는 쾌의 감정으로, 주관에 의해 환기되는 이념과 관련된다. 즉 "숭고한 것은 어떤 감성적 형식에도 함유되어 있을 수 없고, 오직 이성의 이념들과만 관련"되는 감정이다. 따라서 대상의 무한정적이고 몰형식적인 표상 형식이 "(미적) 판단력에 대해서 반목적적이고, 우리의 현시 능력에는 부적합하며, 상상력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폭력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숭고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만약 무한정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에 대해 이성에 의한 이념이 일깨워지지 못한 채 상상력이 좌절에 그친다면 두려움과 공포의 불쾌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대상은 숭고하다고 판단될 수 없다. 결국, 몰형식적인 대상에 대한 동요와 존경은 대상이 가진 크기와 힘의 무한한 거대함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닌, 그것을 넘어서는 이념의 선험성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무한한 것의 표상은 그러한 선험적 이념에 대해 합목적적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그로부터 쾌를 느끼게 된다.

미와 숭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본 바를 정리하자면, 칸트는 미와 숭고를 표상의 형식과 인식 능력 간의 관계, 그리고 쾌와 불쾌의 발생 방식에 의해 미와 숭고를 구분하고 있다. 즉 미와 숭고는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으로서, 미의 감정은 한정적인 형식의 대상에 대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조화에서 기인하는 쾌인데 반해, 무한정적이고 몰형식적인 대상에 대한 상상력의 좌절에서 비롯되는 불쾌가 이성의 이념에 의해 합목적적 쾌에 다다르는 부정의 쾌가 숭고의 감정이다. 이러한 미와 숭고의 차이를 칸트는 "미적인 것은 무규정적인 오성 개념의 현시이지만, 숭고한 것은 무규정적인 이성 개념의 현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명료하게 구분하였다.

칸트는 숭고를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앞서 살펴본 무한정적이고 몰형식적인 표상과 관련한 것이 수학적 숭고이다. 수학적 숭고는 "단적으로 큰 것(Was schlechthin grob ist)"이라고 정의되는데, 여기에서 단적으로 큰 것은 "일체의 비교를 넘어서 큰 것(absolute, non comparative magnum)"을 의미한다. 그것은 수학적 평가로 가늠될 수 있는 양과는 다른 것인데, 왜냐하면 수학적 크기란 계속해서 단위를 더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더 큰 양의 크기를 얻을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적 판단에 있어서는 "그것을 넘어가는 어떤 보다 더 큰 것도 주관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절대적인 척도"가 상정될 수 있으며, 그것은 "숭고한 것의 이념을 수반하고, 수들에 의한 어떤 수학적인 크기 평가도 일으킬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절대적인 척도로 판정되는 크기란 한정되지 않은 무한정적 크기이며 목적에 부합하는 판단에 도달하지 못하는, 따라서 미적 판단력에 반목적적인 몰형식의 크기라 할 수 있다. 즉 상상력의 한계를 아무리 확장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의 전체를 표상할 수는 없는 무한한 크기 앞에서 갖는 외경의 감정이 곧 수학적 숭고 경험이다. 수학적 숭고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대하여 칸트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예로 들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처음 들어서는 구경꾼을 엄습하는 경악 또는 일종의 당혹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이 경우에는 상상력이 전체의 이념들을 현시하기에는 그 이념들에 대해 부적합하다는 감정이 드는바, 이런 감정 속에서 상상력은 자신의 최대한도에 이르러 그걸 확장하려고 애를 써도 자기 자신 안으로 빠져드는데,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상상력은 하나의 감동적 만족으로 옮겨 놓아진다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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