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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의 의미와 정신

k지니 2021. 6. 25. 11:19

그리스어로 숭고(hypsos)는 '파토스적으로 격양된 영혼의 고양'을 의미한다. 숭고는 일반적으로 뜻이 높고 고상한 정신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쓰이는데, 이러한 의미의 원천은 고대의 수사학자 롱기누스로부터 비롯된다. 롱기누스는 신적인 완전성을 표현하는 수사(修辭)로서 숭고를 논하는데 여기서 그는 표현의 기교보다는 신적 정신에 닿고자 하는 정신의 높이를 강조한다. 롱기누스는 이러한 숭고의 정신이 청자(聽子)에게 장대하고 놀라운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교적 수사 이상의 수사적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알리고자 하였다. 롱기누스에 의해 수사적 효과를 위한 정신의 조건으로 처음 제안된 숭고 개념은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근대에 이르러 버크에 의해 취미(趣味) 논쟁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시 소환되어 미학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버크는 숭고를 공포와 고통을 수반하며 안도감(delight)에 이르는 혼합된 감정으로서 심리적 속성을 정교하게 세분하여 설명하였고, 칸트는 선험철학의 체계 내에서 주관의 미적 판단의 한 범주로서 숭고 판단의 선험적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미학의 보편적 개념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숭고는 미, 즉 아름다움과는 경험적, 인식론적 특성이 다른 미적 감정으로서 그 차이점이 부각되어 다루어진다. 그에 따라 대상의 형식에서도 주관의 감정에서도 미와는 구분되는 숭고만의 고유한 이론적 영역이 확보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숭고는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미의 개념에 부속하는 하위 범주, 또는 미의 부수적인 감정으로 취급되었고 그러한 경향이 미학 이론을 지배하면서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숭고 개념이 다시 조명받기 전까지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숭고를 미의 하위 범주로 보는 위계적 구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감성적 지각을 함으로써 정립하는 과정에서 모든 감정을 미의 개념 아래 포괄되는 범주로 파악한 데에 근거한다. 또한 근대 미학에까지 이어져 온 미의 본질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 즉 조화롭고 균형적인 형식적 통일에서 아름다움의 감정이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은 형식적 통일성을 갖추지 못한 대상에서 비롯되는 감정인 숭고를 부수적인 미로 취급하는 견해를 낳았다. 이와 관련하여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숭고 판단이란 취미판단의 부록에 지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 숭고를 미의 부수적 감정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또한 칸트 이후 미학 이론을 집대성하고자 했던 헤겔은 '미학 강의'에서 형식적 통일을 추구하는 미학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계승하는 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숭고 개념을 미학적 논의에서 배제하는 경향을 낳았다.

근대에서 사라진 숭고 개념은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 전통적인 형식미를 파괴하며 등장한 현대의 아방가르드 예술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적용되면서 논의가 다시 부활된다. 미와 예술에 관한 논의에서 숭고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지속적으로 아름다움과는 다른 감정으로서, 그리고 다른 철학적 원리를 함유하는 개념으로 고유하게 다뤄져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 개념은 미와 비교하면 다양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여전히 부족하며, 지금까지도 미적 감정의 한 분류로서 혹은 이례적인 체험으로서 미학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또 한편으로 숭고는 감성적 수용에서 비롯되어 이성의 초월성, 또는 도덕적 이상(理想)에 대한 존경과 외경으로 높여지는 감정으로서 미적 체험보다는 이성적, 도덕적 차원의 체험으로 논의되기도 한다. 숭고 체험에 대한 이러한 의미 부여는 전적으로 칸트 미학의 숭고 개념으로부터 기인한다. 칸트의 미학에서 숭고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 또는 거대한 위력을 가진 힘 앞에서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 그것의 표상을 좌절시키는 무한정적 형식에 직면하여 이를 이성의 무제약적 이념을 통해 목적에 부합하는 포섭에 이르게 되는 미적 판단으로 규정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칸트의 숭고 개념이 단순히 감정적 만족 이상의, 이성적 사유가 관여된 감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숭고 판단에 이르게 하는 이성의 이념은 곧 도덕성으로 향한다는 칸트의 주장을 고려해 볼 때, 숭고는 미적 판단의 한 범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성에 의해 도야된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도덕적 판단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숭고 개념을 대표하는 이론으로 칸트 미학이 주로 거론되고 숭고에 관한 연구 또한 칸트 미학에 한정되거나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숭고 개념에 대한 이해를 칸트 미학에 전적으로 의지해왔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숭고는 순수한 미적 체험으로서보다는 이성과 도덕적 사유와 연결된 체험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숭고의 미학에 관한 현대적 해석에 있어서도 개념의 기본적 원리는 대부분 칸트 미학에 의존한다. 리오타르의 전통적 미의 경계를 넘어서는 숭고 해석 또한 이성의 이념적 사유를 통해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한다는 칸트의 숭고 개념에 근거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 형이상학은 주지하다시피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칸트의 선험철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여 의지 중심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의지 형이상학 체계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예술철학 또한 오성과 이성에 의한 판단이라는 주관 내 추상화된 인식으로서 미적 체험이 아닌, 세계의 본래적 상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직관과 관조의 미적 체험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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