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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자성과 동일성 철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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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자성과 동일성 철학

k지니 2021. 7. 20. 09:11

붓다(Buddha, BCE 624~544)의 가르침은 2500년 동안 시대 상황과 풍토 속에서 다양한 변용을 거쳐 왔다. 그러나 그 사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변화와 생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불교의 근본 교의인 삼법인의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여기서 행(行, samskara)이란 심(心)과 물(物) 일체의 현상적 존재자를 뜻하므로 제행무상이란 현상계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를 본질로 한다는 것이 그 의미가 될 것이다. 행(行)은 연기법에 의해 생성하고 변천하는 모든 존재자 즉 유위법을 말한다. 『구사론송소』(T41, 822a10)에서는 "조작(造作)과 천류(遷流)의 두 의미를 행(行)이라고 한다. 이 의미에 따르면 색 등의 5온도 모두 '행'이라고 해야 하지만 행온에 포함된 법이 많기 때문에 이것만을 행이라고 이름한다.(造作遷流二義名行. 據此義邊, 色等五蘊, 俱合名行, 謂由行蘊攝法多故, 偏得行名.)"하였다. 여기서 '조작'은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고 '천류'는 무상에 의해서 옮겨간다는 뜻이다.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무상한 법을 행이라 한다.

또한 보리수 아래에서 붓다가 얻은 대각의 실내용인 연기법은 모든 현상만물이 상호의존적으로 관계 맺으며 변화한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연기(prattyasamutpada)란 수많은 조건들(prattya)이 함께(sam) 결합하여 일어난다(utpada)는 '상호 의존적 발생'을 의미한다. 일체의 현상이 이런 상호의존성의 원리에 따라 성립된다고 할 경우, 영원불변하게 고정된 것은 있을 수 없고(無常), 혼자만의 동일성(self-identity)을 유지하는 자아도 있을 수 없으며(無我), 자기만의 존재로 지속되는 독립적인 실체도 있을 수 없게 된다(無自性, 空)."고 했다. 후에 용수(龍樹, Nagarjuna, CE 150?~ 250?)는 이러한 상호의존적 변화와 생성의 철학을 정교한 언어로 논증하여 대승불교의 철학적 기초를 수립하였다. 그것이 무자성(無自性)의 공사상이다. 여기서 무자성, 즉 부정되고 있는 '자성(自性)'이란 타 존재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는 고립된 존재이다. 따라서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아 불변하고 고정된 실체적 존재를 의미한다. 요컨대 실체(substance)란 고립, 고정, 불변으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이는 연기법이 관계, 운동, 변화로 특징되는 것과 완전히 대립된다.

각각의 실체와 연기는 다음과 같이 대립된다. 고립은 관계와 대립되고, 정지는 운동과 대립되며 불변은 변화와 대립된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사유경향을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면 동서고금의 다양한 철학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불변'을 근본에 두는 사유경향과 '변화'를 근본에 두는 사유경향의 대립이다. 전자를 실체중심주의, 불변성, 혹은 '동일성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후자를 관계중심, 다양성과 차이 발생의 '생성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거시적 구도는 서양철학의 주류는 존재(being)이고 동방 철학의 주류는 생성(becoming)이라고 보는 관점과 관련이 있다. 존재는 반드시 흘러 움직이지는(流動) 않지만, 생성은 반드시 흘러 움직인다. 전자는 존재학의 철학이고 후자는 생성학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는 순수형이상학적 개념을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삼는데 후자는 순수동작의 '상(象)'을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구도에서 시작된 거라 볼 수 있다.

철학사에서 볼 때 동일성 철학의 예로 흔히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꼽을 수 있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CE 1861~1947)가 서양철학사 전체를 가리켜 플라톤(Plato, BCE 428~348) 철학의 각주(脚注)라고 했듯 플라톤의 철학은 그의 추종자뿐 아니라 그를 극복하려는 사상가에게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유럽의 철학 전통을 가장 일반적이고 무난하게 규정하자면 그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잇따른 각주들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저작에서 마구 발췌하여 꿰맞춘 학자들의 도식적 사고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는 플라톤의 저작에서 퍼져 나간 일반 개념의 풍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도 진정한 의미에서 동일성 철학의 출발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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