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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서의 숭고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본문
버크의 탐구는 감상자의 경험과 사물의 속성의 보편적인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취미에 대한 학문을 정립하고자 시도한 저서이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탐구의 서론 '취미에 관하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사람들이 "서로 매우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취미 각각에 관해서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언급하며 취미에 대한 "공통적인 판단의 원리나 감상의 원리"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버크는 취미에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사례에 근거하여 취미를 미와 숭고의 두 가지 개념으로 범주화하고, 철학, 심리학, 생리학, 물리학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미와 숭고의 경험을 다룬다. 특히 그는 감상 대상의 속성이 감각기관을 자극함에 따라 신체 내부에서 어떠한 물리적,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로 인해 비롯되는 감정은 어떠한가를 관찰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미와 숭고를 구분하고 개념화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버크는 취미를 보편적인 원리로 정립할 수 있는 근거를 '감각'에 두고 있는데, "우리의 모든 즐거움의 주요 원천은 감각이기 때문에 취미의 근본 원리는 모두에게 같다" 따라서 "취미의 특성과 종류에 대해서만 관찰하게 되면 우리는 그 원리들이 전적으로 고정불변한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언급은 그가 영국의 경험론 철학의 전통 속에서 취미를 개념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컨대 그의 저서는 경험론 철학의 전제 즉, 외부 대상 및 신체의 실재성을 확신하고 외부 대상이 신체 내부에 미치는 영향의 공통성을 근거로 하여 체계화한 취미의 논리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전제와 방법론에서 버크는 취미를 구성하는 가장 큰 범주를 미와 숭고로 구분하고, 자연의 어떠한 속성이 미 또는 숭고와 관계되는지를 경험적으로 살피면서 특히 미와 숭고의 경험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만족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적 범주 구분의 기준을 자연을 체험하면서 동반되는 생리적, 감정적 반응에서 찾는다는 것이 미와 숭고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버크는 서문에서 미와 숭고 개념의 명확한 구분과 그것의 근거로서 감정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버크는 " 숭고와 아름다움이 자주 혼동되고 있으며, 서로 매우 다른 사물들이나 때로는 정반대되는 성질을 지닌 사물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열심히 고찰하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바에 따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물의 속성을 주의 깊게 고찰해야만 이런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적 방법론에 따라 미와 숭고 경험의 본질을 신체의 반응을 동반하는 즐거움과 고통의 감정에서 찾으며 따라서 즐거움과 고통을 일으키는 사물의 속성을 관찰함으로써 아름다운 속성, 숭고한 속성을 분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와 숭고의 사물 속성의 분류가 아니라 속성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성질과 그것이 어떻게 만족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와는 다른 숭고의 경험적 원리가 제시된다. 버크에 따르면 자신과는 다른 대상에 대한 성적 욕망이나 사회적 관계에서의 애정에 따른 감정을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데, 즉 "남자나 여자, 그리고 단지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낄 때, 우리 안에서 이들을 향한 상냥함과 애정의 감정"이 곧 아름다움과 관련된 감정이다. 반면에 숭고는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위협하는 고통이나 위험의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러한 고통의 대상이 단지 고통으로 머물 경우에는 숭고의 감정이 될 수 없고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달성되는" 고통이나 위험의 소멸에 수반되는 감정", 즉 안도감(delight)이 숭고와 관련된 감정이다. 이 안도감은 버크가 숭고의 감정적 원리를 밝히는데 핵심이 되는 개념으로, 공포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미적 만족의 긍정적 감정으로 승화된다는 숭고에 대한 버크의 이러한 설명은 미와 구분되는 숭고 감정의 중요한 특징으로 간주한다.
버크는 단일한 즐거움의 감정과 고통이 해소되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다르게 보는데, 안도감은 바로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전이되는 감정으로서 위협이 되는 공포의 대상에 대한 고통의 감정에서 안전한 거리를 인식함으로써 자기보존의 평온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버크는 안도감에 대해 "어떤 절박한 위험이나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날 때 우리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었던가를 돌이켜 생각해보라. 우리 마음은 이때 상당히 절제된 감정을 지니게 되고 일종의 경외감, 두려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평온한 느낌이 들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안도감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감정, 쾌와 불쾌가 혼합된 특이한 감정으로서 버크가 숭고의 감정적 원리를 밝히는데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즉 숭고의 감정은 고통과 고통에 대한 공포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사랑, 즐거움으로 대변되는 아름다움과 구분되는 감정의 기원이다. 버크는 미와 숭고의 이러한 차이를 명확하게 지적한다. 버크에 따르면 아름다움과 숭고는 이렇듯 서로 매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고통에, 다른 하나는 즐거움에 근거하고 있다. 그 원인이 되는 사물들의 직접적인 특성 때문에 그것들의 모습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한다 해도,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영속적인 차이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