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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래불거의 연기적 무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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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래불거의 연기적 무상

k지니 2021. 8. 7. 09:21

승조는 불래불거(不來不去)의 논리를 통해 역동적 흐름으로서의 연기적 무상(無常)을 드러내려 한다. 일례로 그는 일반인들의 실체론적 운동 이해 방식을 범지(梵志)라는 수행자의 에피소드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은 소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몸이 동일하므로 '백세가 되어도 형질은 동일하다[百齡一質]'고 말한다. 다만 세월이 흘러간 것을 알 뿐 형질[形]도 따라 흘러감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범지(梵志)가 출가하여 흰머리가 되어 돌아오자, 이웃 사람이 그를 보고 말했다. "옛 모습 그대로구나." 범지가 말했다. "내가 과거 그 사람인 것 같으나 과거 그 사람이 아니요." 이웃사람이 모두 놀라며 그의 말이 잘못됐다고 여겼다."는 이야기로 비판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범지가 세월이 흘러 흰머리로 돌아왔을 때 그의 모습의 변화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현재의 모습에서 옛 모습의 흔적을 더듬어 동일성을 파악하여 "옛사람 그대로"라고 그를 범지라고 알아본다. 이때 사람들이 변화를 주장하는 근거는 "과거의 모습이 현재로 오지 않는다[昔物不至今]"는 점이다. 과거의 젊은 얼굴의 범지가 그대로 현재의 늙은 백발의 범지로 온 것이 아니다. 과거 홍안(紅顔)과 현재 백발(白髮)의 차이에서 변화를 인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관념의 이면에는 시간의 변화에 견디는 자기동일자로서의 범지가 전제되어 있다. "사람들이 소년 시절과 장년 시절의 몸이 동일하므로 백세가 되어도 형질은 같다.(少壯同體, 百齡一質)"고 여기는 것이 그것이다. 마치 젊은 얼굴에서 백발의 노안으로 변하는 것이 옷을 갈아입듯 현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변화의 이면에 불변적 기체(基體)로서 형질(形質)이 엄존하고 있다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인의 변화 개념에 사물의 술어적 속성과 변화를 주어적 실체에 부가된 것으로 파악하는 영화적 착각이 개입되어 있다. 자기 동일적 주어로서의 범지를 고정시켜 놓고 그에 부가된 술어적 상태만 홍안에서 백발로 변한 것을 무상 변화라고 여긴다. 즉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술어적 상태는 변화하였지만 주어로서 범지는 불변하는 동일자로 인식된다.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불변성을 전제하고 있다. 승조가 보기에 변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경험의 선(線)을 따라가는 태도를 결여하고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눈앞에 나타난 그대로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目對眞而莫覺)." 있는 그대로 봄이란 실체적 주어를 상정하지 않고 동사적 현상의 나타남을 그대로 찰함이다. 『가전연경』에는 여실지견을 비유비무의 중도적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생성적 연기의 관점에서 여실히 보면 존재도 비존재도 주장할 수 없다. 용수의 『중론』이 『가전연경』의 주석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까짜야나여 세계는 대체로 존재와 비존재라는 양극에 의해 유지된다. 그러나 올바른 견해로 세계의 생성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세계와 관련하여 비존재라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역시 올바른 견해로 세계의 소멸을 그대로 보게되면 세계와 관련하여 존재라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흘러가는 실재의 변화에만 순수하게 주목한다면 우리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동일자로서의 불변적 범지가 아니다. '범지'는 사후적 인식에 의해서 재구성된 허구적 주어일 뿐이다. 눈앞에 직접 경험된 사건은 홍안의 모습과 백발의 모습이 나타났다는 진행적 상태뿐이다. 생성의 일원론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본다면 언어적 재구성에 의한 자기동일적 실체는 해체될 것이다. 이는 '범지는 홍안이다.', '범지는 백발이다.'라는 표현보다 '홍안의 범지1', '백발의 범지2'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생성적 실재에 부합하는 표현임을 보여 준다. 범지라는 명사적 주어는 해체하고 순수하게 경험에 나타난 생성적 현상만을 그대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범지의 말대로, '옛날 그 사람인 것 같으나 옛날 그 사람이 아니다(吾猶昔人, 非昔人也).'라는 범지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생성하는 차이성이다. 같으면서도[猶] 아니[非]라는 것이다. 생성의 흐름 속에서 생성적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동일적 단일성[常]과 단절적 차이성[斷]을 모두 배제한다. 승조는 범지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의 차이성의 예를 일반화하여 과거와 현재 간의 불거불래의 논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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