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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미적 직관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k지니 2021. 7. 3. 07:22

쇼펜하우어의 이념과 플라톤의 이데아 사이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이념이 칸트의 이념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칸트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부적절하게 잘못 사용했다는 언급의 근거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즉 칸트에게 이념은 오성의 개념 통합을 완결시키는 무제약자로서 이성의 개념적 사유에 의해 달성된다. 반면에 개별적 사물의 원형이 되는 플라톤적 의미의 이데아 인식은 이성의 개념적 사유와는 전혀 무관하며 직관 때문에 파악되는 영원한 형상이다. 쇼펜하우어에게 개념적 사유는 오히려 이념의 인식을 방해하고 거리를 멀게 하는 근거율에 속한 인식이며, 반대로 이성의 개념화에서 벗어난 직관적 인식 때문에 이념은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으로 칸트의 이념과 쇼펜하우어의 이념 간에는 이성에 의한 추상적 사고와 이를 벗어난 직관이라는 분명한 인식론적 대립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와 칸트의 이념 또한 동일한 차이를 내포한다. 아울러 쇼펜하우어가 영원한 형상으로서의 이념을 파악하는 인식으로서 제안된 미적 직관은, 이념에 다다르는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이 성립되는 출발점이 된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세계를 이데아의 모사로서 그림자에 비유한다. 그리고 예술은 모사된 그림자를 다시 모사하는 이중의 모사이므로, 예술가는 참(이데아)으로부터 이중으로 멀어지게 하는 자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예술가를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추방론까지도 주장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는 화가를 일컬어 "실재에서 3단계 떨어져 있는 제작물의 제작자"로 언급하며 모방은 진지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유희이며 "모방술은 열등한 것으로서 열등한 것과 결함 하여 열등한 것들을 낳네”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방 이론을 근거로 하여 플라톤은 "서정시나 서사시를 통해 감미로운 무사 여신을 받아들인다면, 자네 나라에서는 관습과 만인에 의해 언제나 최선의 것으로 간주하던 원칙 대신 쾌락과 고통이 군림하게 될" 것을 심각히 우려하여 "시를 우리나라에서 추방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언급한다.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을 모방하는 행위로 간주함으로써 진리(이데아)로부터 멀어지게 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서 모방으로 비판하는 예술 행위는 실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무대 미술로 대변되는 회화를 주로 거론하며, 시인 추방에 관한 언급에 있어서도 쾌락과 감정을 부추김으로써 시민들을 충동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는 시인에 대해서만 한정할 뿐, 신과 훌륭한 인물을 찬미함으로써 국가의 인재 양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시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인 추방론을 예술 행위 자체 또는 모든 예술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배격으로 이해하는 것은 플라톤이 말한 본래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는 다소 비약이라 점이 지적될 수 있으며, 최근에는 플라톤의 예술관을 이러한 맥락에 따라 재평가하는 논의도 등장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예술에 대한 태도에서는 플라톤과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예술에 대한 이러한 입장의 차이 또한 쇼펜하우어와 플라톤의 이념의 차이에 근거한다. 앞서 살핀 데로 개별 사물과 이념을 모사와 모범의 관계로 파악한 것은 동일하나, 플라톤은 개별 사물과 이데아를 거짓과 참의 세계로 경계를 분명히 구분하는 반면 쇼펜하우어는 표상으로서의 현상과 의지로서의 본질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로서 이념의 존재를 상정하는데 여기에서 이념은 표상과 의지의 경계에 놓여있다. 따라서 이념은 플라톤적 의미에서 참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닌, 의지라는 본질의 세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려진 통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플라톤에게 예술가는 개별자라는 거짓을 모사하는 참을 가리는 자이지만, 쇼펜하우어에게 예술가는 오히려 개체의 모범으로서 이념을 미적으로 직관하고 재현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간주된다. 쇼펜하우어에게 이러한 직관의 능력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는 ‘천재’로 높여진다. 이념을 인식하는 천재의 개념은 칸트에 의해 처음 제안되어 쇼펜하우어에게도 그대로 수용된다. 예술에 관한 플라톤과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의견 차와 관련하여 미학자 크로체(Croce)는 "예술이 바로 이런(의지의 직접적 객관화인) 이념들을 묘사하는 것이지 이것들에 대한 생기 없는 모사인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예술가의 이념에 대한 미적 직관(asthetische Anschauung)은 일반적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표상들이 충분 근거율에 따라 결합된 세계이며, 그렇기 때문에 시간, 공간, 인과율을 벗어난 형식으로는 경험될 수 없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미적 직관이 근거율에 의한 인식과는 다른 주관의 상태를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이념 자체를 이념의 현상이 개체에게 관찰되는 방식과 구별하게 되어, 이념 자체는 본질적으로, 이념의 현상은 비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피력한다. 예술가는 비본질적 인식에서 벗어나 현상 속에 숨겨진 보편적 형상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재현에 이르고자 하는데, 미적 직관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서 예술가는 개별자의 현상적 인식에서 벗어나 예지적인 성격으로 사물의 외연 너머의 이념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