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천재성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쇼펜하우어는 순수주관으로서, 개체로서의 주관을 넘어서 자신과 세계를 의지로써 인식하고 의지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없다는 의미에서 나와 세계의 의지는 단일한 하나이며 '이 모든 것 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개체성이 망각된 주관, 즉 "인식만 남고 의지는 사라진" 인식은 무욕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의지가 사라짐에 따라 모든 의욕과 그에 따른 갈등, 고통 또한 사라져 평온함에 이르게 되는 인식의 상태를 관조(Kontemplation)라 말한다. 미적 인식의 태도로서의 관조는 칸트의 미적 인식 조건으로서의 '무관심성'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무관심성은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의 판단에 있어 그것의 현실에서 갖는 중요성, 즉 나의 필요와 이해와는 무관하게 "순전히 바라봄에서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이다. 이러한 무관심성은 미적 감상을 위해 전제가 되는 주관의 인식 조건으로서 개체의 의욕이나 충동에서 벗어난 미적 관조의 상태와 유사한 맥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칸트의 무관심성은 미적 판단을 위해 주관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라면, 관조는 주관이 근거율을 벗어나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순수주관의 인식에게 주어지는 상태라는 면에서 전혀 다른 인식론적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쉼 없는 충동과 혼잡 대신, 소망에서 두려움으로, 기쁨에서 고통으로의 끊임없는 이행 대신, 모든 이성보다 높은 평화, 대양처럼 완전한 고요한 마음, 깊은 평정, 흔들림 없는 확신과 명랑함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러한 평정에 이르는 관조 상태는 미적인 체험이 계기가 되어 도달할 수 있다. 즉 예술가는 의지의 지배가 사라진 순수주관의 인식 속에서 대상을 미적으로 관조할 수 있으며, 이때 예술가는 미적 대상에서 이념을 직관한다. 이념을 직관하는 예술가의 미적 관조(asthetische Kontemplation)의 체험을 쇼펜하우어는 주변의 모든 세계, 즉 시간과 공간, 인과율이 지배하는 표상의 세계가 사라지고 영원한 이념을 관조함으로써 예술가의 세계는 "영원한 현재"에 머문다고 표현한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가가 이념을 직관하는 미적 관조로서 예술을 수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율과 개체적 욕망을 벗어나는 순수주관의 인식에 다다를 수 있는 타고난 자로서, '천재(Genius)'가 거론되는데 쇼펜하우어는 천재의 천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천재성이란 순전히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직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고, 원래 의지에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식을 이 봉사로부터 떼어놓는 능력, 즉 자신의 관심, 의욕, 목적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그에 따라 한순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한 인식주관으로서 세계의 명백한 눈으로 남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미적 직관에 이른 천재의 눈은 개체화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의 어떠한 목적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목적과 의욕을 가진다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이미 의지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러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는 또한 현실의 개체로서의 나이다. 따라서 객관에 몰입하는 미적 관조는 어떤 주관의 관심과 의욕, 목적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천재는 현실적인 목적과 이해를 떠나 세계를 표상이 아닌 이념을 직관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천재성에 요구되는 인식 능력의 조건으로서 상상력(Phantasie)을 말하는데, 천재의 상상력에 의해 불러일으켜지는 환상(Phantasma)을 통해 경험의 표상을 넘어 이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상상력은 'Phantasie'의 번역어로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말하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떠올리는 능력을 의미하며, 칸트가 말하는 감성과 오성을 매개하는 제3의 인식 능력으로서, '구상력'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Einbildungskraft'와는 의미가 다르다. 쇼펜하우어는 상상력(Phantasie)의 역할을 "사물들 속에서 자연이 실제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려고 노력은 했으나 실현시키지 못한 것을 보기 위해서 객관에 대한 그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설명하며, 칸트는 상상력(Einbildungskraft)의 역할을 "개념을 감성화하는 일과 그의 직관들을 오성화하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쇼펜하우어는 환상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환상이 그(천재)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현실을 훨씬 뛰어넘어 그의 지평선을 넓힘으로써, 그가 실제로 감각하게 된 몇 안 되는 재료로 여타의 모든 것을 구성하여 거의 모든 가능한 인생의 상이 자기 옆을 지나가게 하는 환상이란 이념을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이념의 인식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 작품이다"고 했다. 환상은 쇼펜하우어에게 추상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과 대립하여 이념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천재의 인식 방식이다. 천재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념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함이다. 즉 사물 속에서 자연이 실제 형성하는 불완전한 상태를 보지 않고, 개체들 간의 투쟁으로 인해 순수한 실현이 불가능해진 자연의 의도를 사물 속에서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환상은 자연이 외연으로 드러난 표상의 우연적 상이 아닌 자연이 본래 드러내고자 하였던 보편의 상, 즉 이념을 파악하기 위해, 상상력이 구성하는 직관의 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환상은 표상의 그림자를 벗겨내고 이념을 직관하도록 돕는다는 의미에서 플라톤의 비유에 등장하는 동굴 밖을 비추는 햇빛과도 같은 역할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천재는 상상력에 의해 우연과 투쟁으로 점철된 경험세계를 재구성하는 환상을 수단으로 하여 이념의 직관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