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로서의 숭고
쇼펜하우어는 칸트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미학을 통해 숭고에 관한 판단이 아닌 숭고 그 자체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였다. 쇼펜하우어의 의지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예술과 숭고가 가진 근원적인 의미에 접근해보면, 예술에 대한 이전의 관점, 즉 재현의 기술, 또는 감정적 만족의 대상이라는 의미와는 다른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 즉 개체화된 세계의 형이상학적 인식으로서 예술에 접근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과 숭고론은 그의 의지 형이상학과 밀접한 연관 하에 전개되며, 이념은 표상 세계와 의지 세계를 매개하는 매개자이자 예술이 발견하고 보존해야 할 미적 모범으로서 예술철학과 숭고론에 대한 이해에 있어 선결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에서 토대가 되는 주요 인식론적 관점 즉, 이념에 대한 미적 관조와 이러한 미적 관조에 이르게 하는 주관의 상태인 순수인식주관에 대해 살펴보고 삶에서 예술에 대한 숭고 체험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와 숭고의 개념적 차이를 통해 쇼펜하우어의 숭고 개념을 이해하고, 개별 장르 예술에서 미와 숭고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쇼펜하우어의 예술관을 조명해본다면,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과 숭고론이 어떠한 의의와 영향을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과 숭고 개념에 대한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그동안 칸트 미학에 가려졌던, 그리고 미학사에서 미미하게 다뤄졌던 쇼펜하우어의 예술과 숭고 개념의 고유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삶에서 예술과 숭고 체험이 갖는 의미를 되살려 새로운 미학적 논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아름다움(das Schone)과는 다른 미적 개념으로서 숭고함(das Erhabene)에 관한 논의는 고대 수사학자 롱기누스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남긴 '숭고에 관하여(Peri hypsous)'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숭고에 관한 최초의, 그리고 고대 유일의 저서로서 숭고에 관한 논의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다. 하지만 중세 시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근대에 이르러 다시 재조명되며 미학(Asthetik)의 성립과정에서 숭고가 중요한 미적 개념으로 부각되는데 계기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숭고에 관하여(Peri hypsous)'는 롱기누스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숭고에 관하여(Peri hypsous)'의 필사본들의 대본이 된, 10세기에 쓰여진 파리 필사본(Codex Parisinus 2036)의 표제에는 'Dionysiou Longinou('디오뉘시오스 롱기노스 저'란 뜻)'라고 적혀 있어, 기원후 3세기의 그리스 수사학자 겸 철학자인 캇시오스(Kassios) 롱기노스(라틴어 표기법에 따라서는 '롱기누스')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18세기 초 같은 필사본의 차례에는 Dionysiou e Longinou로 적혀 있어 두 이름 사이에 e('또는'이란 뜻)란 단어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비평서의 저자는 기원후 1세기의 그리스 문예 비평가 겸 역사가인 할리카르낫소스(Halikarnassos) 출신 디오뉘시오스라는 주장이 유력시되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저서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문체와 문제 접근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이 주장은 더 이상 제기되지 못하였다. 현재에는 이 저서의 일부 내용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으로 추측컨대 대체로 기원후 1세기 로마 및 유대 문화와 접촉이 있던 한 그리스 출신 저술가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미학(美學, Asthetik)'에서의 미의 의미는 아름다움으로서의 미보다는 '감성'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적합하다. 근대 철학에서 'Asthetik'은 '미학'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감성론'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미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정초한 바움가르텐은 이 학문을 "감성적 지각에 관한 학문"(Baumgarten, A. G., Aesthetica, Frankfurt: Kleyb, 1750)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으며, 칸트에서도 'Asthetik'은 감성적 지각을 선험적으로 분석하는 이론, 즉 선험적 감성론으로서 전개된다. 'asthetisch' 또한 '미적', '미감적' 등으로 번역되지만 '감성적'이라는 의미의 맥락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롱기누스의 저작 '숭고에 관하여'는 프랑스의 문인 브왈로(Nicolas Boileau)에 의해 근대 미학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졌다. 브왈로는 1674년 이 책을 번역 출간함으로써 잊혀져 있던 롱기누스를 다시 불러내고 숭고를 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떠오르게 했다. 17세기 당시 유럽은 고대문화를 전거로 하여 근대문화의 부흥을 꾀하던 문예 부흥의 시기로서, 고대의 문헌과 예술 작품을 연구하고 이를 규칙으로 정립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브왈로는 고전주의 미학을 수호하는 중심인물로서 고전의 이상적인 시의 규칙을 집대성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그때까지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 번역하고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당시까지 시학과 문체론의 고전으로서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Peri poietikes)'과 호라티우스(Horatius)의 '시학(Ars poetica)'이 모범이었으며 극의 이상적인 형식과 문체의 근거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의 저서는 규칙의 조화와 질서를 미의 이상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와 달리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에서는 규칙(logos)보다는 열정(pathos)과 천재성, 조화와 질서보다는 장대함과 생기에 더 큰 미적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롱기누스의 이론은 그의 시학이 기존의 냉정한 이론적 시학이 아닌 힘과 열정의 수사학이라는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대비된 미의 이론으로 근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