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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의지로서의 뜻을 가질 수 있나?

k지니 2021. 7. 10. 08:29

쇼펜하우어는 예술 장르 각각에 대해 다루면서 장르적인 특수성이 어떻게 이념의 직관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피력하는데, 이 가운데 특별히 음악은 쇼펜하우어가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다르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쇼펜하우어의 의지 형이상학 내에서 예술은 의지의 가장 적합한 객관화, 즉 보편적 형상이자 모범으로서 이념을 직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인식 체험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미적 대상에서 이념을 발견함으로써 의지 세계에 매개적으로 관계하는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은 의지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데,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음악은 이념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 세계의 근원인 의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그 자체로 형이상학인 예술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모든 다른 예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했다. 음악이 세계 속에 있는 존재의 어떠한 이념을 모사하거나 재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음악은 세계 그 자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세계를 이루는 이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개별적 사물의 세계를 이루는데, 음악은 이러한 전체 의지의 직접적인 객관화이자 모사격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음악은 이념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모사라고 분리하였다. 이념도 이러한 의지의 객관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덧붙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음악만이 의지의 직접적인 객관화인가에 대한 근거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음악을 구성하는 음의 진행과 감정을 자극하는 선율의 흐름이 의지의 객관화 단계와 유비적인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음악 형식에서의 화성학과 음의 진행을 들어 음 자체와 의지의 유비를 말하는데, 가령 :화음에서 기초 저음은 세계에서 만물의 토대가 되고 만물의 발생과 발전의 기점이 되는 무기적 자연, 즉 가장 자연 그대로의 물질이다.", "보다 높은음은 내가 볼 때 식물계와 동물계를 대변한다. 음계의 특정한 음정은 의지의 객관화의 특정한 단계, 즉 자연에서의 특정한 종과 유사하다.", "하나의 전체를 나타내는 주성부에서, 나는 인간의 사려 깊은 삶과 노력인 의지의 객관화의 가장 높은 단계를 다시 인식한다."와 같이 음과 화성으로 이루어진 선율이 어떻게 의지와 상응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언급은 그의 의지 형이상학의 체계 내에서 음악이 의지의 직접적인 객관화로서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음악은 청각적 감각이라는 질료를 통해 표상되지만 이러한 청각적 표상은 이념의 매개 없이 의지가 직접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즉 의지는 음으로써 드러남으로써 감상자에게도 이념으로 조망되지 않고 동일한 의지로서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반응된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의지, 즉 충동과 격정, 감정은 개체적이고 개별화된 인격적 감정이 아닌 보편적 감정이며, 음악은 '보편적 언어'로서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둘째는 음악이 문자의 언어적 형식이나 돌이나 색료 등의 물질적 형식이 아닌 비물질적, 비언어적인 형식, 즉 소리가 울리는 음의 감각에 의해 다른 예술보다 직접적이고 신체적으로 경험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창작자는 어떤 매체 즉 문자 또는 조각, 회화 등의 매개물을 통해 보편적 이념을 재현하고 감상자 또한 매체의 형식에 조응하여 재현된 내용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와 달리 음악은 언어적, 물질적 매체의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신체의 반응과 직결된 감정을 통해 체험된다. 즉 음악을 통해 감상자는 의지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체험하는데, 우리 자신의 몸의 충동, 마음이 움직이는 욕망이나 감정, 격정 등을 의지의 일시적 변형으로서 내면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한다. 여기에서 음악은 특수한 매체의 형식, 즉 표상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해 준다. 따라서 음악은 "이런저런 개별적인 특정한 기쁨, 이런저런 비애, 고통, 공포, 환희, 흥겨움, 마음의 평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비애, 고통, 공포, 환희, 흥겨움, 마음의 평정 그 자체" 즉, 특수가 아닌 의지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 감상의 체험을 '음의 표상에 의한 의지의 충동'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악은 더 이상 이성에 의해 추상되거나 사유된 예술이 아니며, 추상의 개념으로 담을 수 없는 의지의 충동을 음악의 선율은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렇듯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의지의 세계에 직접 관계된다는 면을 강조하면서 음악의 특별한 위치를 강조한다. 음악에 대해 쇼펜하우어가 부여하는 이러한 특별한 의미는 "음악이란 자신이 철학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정신의 무의식적인 형이상학 연습이다."라고 언급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 문장은 쇼펜하우어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라이프니츠가 음악을 수학에 비유하며 언급한 "정신이 자기가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이 산술에서 행해지는 무의식적 연습"이라는 말에 대해 이것이 ‘음악의 껍질만을’ 다룬다고 비판하고 음악의 본질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음악을 통해 의지의 충동으로서 삶의 본질을 자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음악은 인간의 삶과 직결된 근본 언어이자 존재론적 언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의 삶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수행하는 실존 양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