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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예술과 형이상학

k지니 2021. 7. 15. 07:28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단지 주관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나 감각적 유희를 즐기기 위한 수단의 숙련, 즉 '테크네(techne)'로서의 의미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는 아름다움을 위한 자율적인 표현으로서의 예술은 근대의 개념이며, 고대의 예술은 그리스어로 테크네(techne), 라틴어로는 아르스(ars)라는 용어로 불리며 오늘날 수공업, 숙련된 기술, 학문, 예술 등을 모두 포함하는 제반 인간 활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고 했다. 따라서 고대의 예술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테크네(아르스)의 학습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의 기원이 되는 테크네(아르스)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테크네를 무언가 생산하는 활동으로서 정의하였다. 모든 기술은 생성에 관련되며, 기술의 관심사는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제1원리가 제작자에게 있고 제작물에게 있지 않은 무엇인가가 어떻게 하면 존재하게 될는지 연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의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로서 예술의 가상성에 그 한계를 가두지도 않는다. 미메시스(minmesis)는 모방, 모사, 재현, 현시 등으로 번역된다. 미메시스는 예술을 자연의 모방 행위로 보는 개념으로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언급되었으며 진리를 왜곡하는 가상이라는 측면에서 예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내포하며 철학사의 전통적 견해로 수용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메시스에 대한 재해석이 논의되는데, 아도르노는 자연에 대한 모방 행위를 자연을 자신과 분리하여 대상화하는 인식이 아닌 타자로서의 자연과 동화되고자 하는 인간의 내재적 경향의 발현으로 해석하며 미메시스로서의 예술 개념을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 체험에 형이상학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미학과는 다른 지점에서 독특한 미학적 성취를 이룬다.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은 의지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함은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의 역할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한 학문으로서 예술, 즉 이전의 미학적 논의와도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상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창작 또는 감상의 감각적, 정서적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인간의 활동 중의 하나로서 창작자가 자연과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 표현물을 지칭한다. 감상자는 표현된 예술품을 '아름답다' 또는 '숭고하다'라고 인식하며 감상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여기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체험하는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 근대 미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경험론적 취미론은 대상의 속성에 따라 반응하는 감정을 심리학적, 생물학적 관점에서 열거함으로써 미와 숭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들에게 미와 숭고의 체험은 감각으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의 변화로 인식되었다. 이에 비해 바움가르텐은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 정의하며 미적 인식에 관한 보편적 이론으로서 미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초하고자 하였다. 그는 "미학의 목적은 감성적 인식 자체의 완전함"이며 이때 완전한 감성적 인식은 '아름다움'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추함'으로 구분한다. 즉 '아름답다'라는 감성의 속성을 사유와 결합시키며 감성적 인식의 완전함으로써의 미는 표상들의 조화와 질서 잡힌 방식으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를 오성에 의한 사유의 한 영역으로 보는 바움가르텐의 이러한 접근은 이후 독일 미학의 토대가 되며 칸트에게 수용된다. 칸트는 미와 숭고의 인식을 주관의 합목적적 판단 원리로 규명함으로써 미적 판단의 선험적 보편성을 정초한다. 하지만 바움가르텐과 칸트에 의해 정립된 근대 미학의 원리, 즉 보편적인 인식 규범에 기초한 미학 이론은 쇼펜하우어에 의해 균열이 시작되어 이후에 이성을 거부하는 미학적 조류의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미학 조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는 니체를 들 수 있다. 니체의 예술철학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과 예술론의 영향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니체의 저작 "비극의 탄생"은 삶의 근원적 비극성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하는데서 출발했다. 니체는 예술을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수동적 역할이 아닌 삶을 향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능동적인 역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디오니소스적 예술관을 주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