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예술미학의 한계점은
숭고 체험에 있어서도 쇼펜하우어는 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근대 미학에서 미와 숭고를 다른 미적 경험으로 구분한 것은 버크를 중심으로 한 영국 취미론의 업적이며, 숭고에 대한 체계적 이론화는 칸트의 공로라 할 수 있지만, 쇼펜하우어는 숭고를 아름다움보다 더 고양된 주관의 정신적 체험으로 나아간다. 안성찬은 숭고의 미학에서 미학사에 미친 쇼펜하우어의 영향사적 의미를 두고, "바그너와 니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비극의 탄생'에 나타나는 니체의 숭고 개념에 그의 의지의 철학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함머마이스터(Hammermeister)는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이 이후의 실천예술계에 미친 영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예술 생산이나 그들 스스로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예술계에 끼친 쇼펜하우어의 영향력에 비해 철학 일반과 미학에 대한 그의 영향은 니체를 제외하고는 미미하며, 쇼펜하우어의 예술 사상은 사상사에서 고립된 채로 남아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한편으로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이후 19세기의 낭만주의 예술사조에 미친 영향을 들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예술론은 예술을 통해서 인간이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19세기 낭만주의 미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칸트와 쇼펜하우어에 의해 본격화된 숭고의 미학에 관한 논의는 '무한에의 동경', '낭만적 아이러니'를 모토로 하는 독일 낭만주의와 깊은 내재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삶의 조건, 고통의 불가피성, 삶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를 내맡기게 하는데서 예술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20세기의 실존적 문학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또한 헤겔 이후 미학사에서 사라진 숭고에 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던 마지막 미학자로서, 현대에 이르러 아방가르드 및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예사조와 더불어 숭고가 재조명되는데 있어 다리를 놓아준다는 면에서도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다.
미학사에서 숭고 개념에 대한 논의를 축소시킨 것은 헤겔 미학이 결정적이다. 헤겔이 그의 "미학강의"에서 숭고 개념을 미의 범주 내로 다시 포함시키며 내용에서도 극히 미미한 일부로 할애한다. 아도르노는 고전적인 미의 이념에 저항하는 '충격과 파괴의 미학'으로서 현대예술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숭고를 제시하고 있으며, 리오타르 또한 서구의 이성중심주의 문화, 합리주의적 예술관에 대립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안적 미적 개념으로서 숭고의 미학을 제안하였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이전 미학과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독특한 지위를 부여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비판과 한계 또한 제기된다. 특히 그의 형이상학과 연관되는 지점에서 한계점이 지적되는데 주로 이념과 순수인식주관에 관한 의문이 그것이다. 이념에 있어서는 본 논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식론적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는 이데아처럼 실재하는 본질의 세계도 아니며, 주관이 인식하는 표상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도, 또한 예술가가 조망하는 이념의 존재에 있어서도 모호한 위치에 가려져있다는 점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이다. 또한 이념을 조망하는 주관의 상태, 즉 순수인식주관의 불가능성과 모순에 대한 지적 또한 이와 연결되어 있다.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미적 주관의 상태는 주관을 벗어난 주관, 의지를 벗어나려는 의지와 같은 비합리적 구도, 세계의 본질인 의지를 벗어나 머무는 장소의 모호함이라는 측면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비판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모순을 두고 무조건적인 '인식론적 낙관주의' 또는 '미적 신비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인식론적 낙관주의는 함머마이스터가 쇼펜하우어의 순수주관의 모호한 인식론적 작동원리를 비판하며 언급한 개념이다. 크로체는 미학사를 다룬 "미학"에서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을 '미적 신비주의'로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미학에서의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은 낭만주의 운동의 심리적 조건이자 상상력이 가득한 예술 이해라는 당시의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크로체는 이러한 미적 신비주의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보기 보다는 예술 활동의 자유로운 의식, 개별자를 넘어 보편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가 예술을 좀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점에 있어서는, 다만 쇼펜하우어의 철학 그 자체가 근거율과 개념적 사고의 비진리성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결국 다다를 수밖에 없는 학문적 딜레마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며, 이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