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의 이분의 역설
제논이 운동을 부정하는 최초의 논증은 '이분(二分, dichotomy)의 역설'이다. 심플리키오스(Simplicius of Cilicia, CE 490-560)가 기록한 제논의 논증의 단편은 다음과 같다. "어떤 운동(가)이 있다면, 운동체(나)는 운동을 끝마침에 있어서 무한한 것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다) 그러므로 운동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 이분의 역설은 귀류논증으로 되어있다. 먼저 (가)에서 운동의 존재를 가정해 놓고, (나)에서 운동은 운동체의 공간상의 연장량(延長量)으로 표시된다. 이 연장량을 무한 분할하면 그 통과가 불가능함을 보임으로써 (가)의 가정이 잘못되어 있음을 (다)를 결론으로 논증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무한 분할과 운동 간의 관계가 좀 더 차분히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므로 보완 논증을 좀 더 보자.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일정한 거리를 이동해 가야한다. 그러나 모든 연장(거리)은 무한 가분하므로 그 운동체는 먼저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거리의 절반을 지난 뒤에 전체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 운동체는 전체의 절반 거리를 지나기 전에 그 절반을 지나야 하고, 다시 그 절반이 절반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어떤 주어진 길이의 절반으로 나누는 일은 항상 가능하므로 그 절반이 무한히 있다. 요약하면, 모든 크기는 무한 분할을 갖고, 따라서 유한한 시간에 어떤 연장량을 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문제 되는 개념은 무한 분할이다. 가령 화살의 운동을 생각할 적에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일정 거리를 지나 과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분할된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 즉 이동이 존재한다면 무한성이 완성된 것으로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한은 무한히 접근하는 과정이라는 잠재적 개념이지 어떤 완성되거나 종료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완성된 무한'은 잠재적 무한이 끝난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잠재적 무한 개념은 완성 개념 자체를 거부하며, 따라서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제논에게서 무한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무한 개념을 운동에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진다고 보았다.
제논이 무한분할 개념의 모순을 들어 운동을 거부한 것은 그가 다자를 부정하고 일자를 옹호한 것과도 필연적 관계를 가진다. 일자는 다자로 분할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플리키오스가 해설한 제논의 다자 부정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만일 다자(多者)가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것들은 무한할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는 항상 다른 것들이 있을 것이고, 다시 저것들 사이에는 다른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존재하는 것들은 무한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크기에 따라서 무한한 것을 이분(二分)함에 의해 증명했다." 인용문의 말미에 다자의 부정 논증도 이분(dichotomy)의 논리에 의해서 입증 가능함을 진술하고 있다. 앞에서 운동의 불합리를 논증하기 위해서 축소 개념으로서 이분의 개념을 언급하였다면 여기서는 반대로 무한한 연장의 확장적 개념으로 이분의 개념을 사용하여 일자를 논증한다. 제논의 다자 부정에 대한 논증은 어떤 크기를 가진 존재가 이분된다면 그것은 무한 분할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전개된다.
제논은 "이분을 계속한 결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의 것이 수적으로 무한히 남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크기를 갖는 것이라면 크기를 갖는 무한한 것이 더해지면 그 전체는 무한한 크기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불합리하다. 만일 이분을 계속한 결과 나누어진 것이 크기를 갖지 않는다면 크기를 갖지 않는 것이 무한히 모인다 할지라도 그 전체는 크기를 갖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불합리하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어느 경우든 불합리하고, 나누어진 최소의 것이 크기를 갖거나 안 갖거나의 두 가지 경우만 있으므로 귀류법에 의해 존재는 나누어질 수 없고, 따라서 연속적 일자가 증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을 거치지 않더라도 '완성된 무한'개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통해 어떤 최소의 것이 남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일 수도 있다. 잠재적 무한은 완성개념을 거부하므로 끝이 있을 수 없고 최소의 것으로의 분할도 완료되지 않는다. 만일 최소의 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직 나누는 것이 완결된 것이 아니다. 최소의 것이 남아 있다면 잠재적 무한이 완성되었다는 모순된 말이 되는 것이다. 나누어진 최소의 것의 크기의 유무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로써 제논은 존재가 다자로 나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제논은 다자와 운동이 실현된 살아있는 현실공간을 완성된 무한이라는 불합리가 성립한 것으로 보아 현실을 오히려 감각의 착각 내지는 환상으로 치부한다. 무한 분할의 역리에 걸려 존재가 다자로 나뉠 수 없고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논증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분할 불가능한 연속적 존재라는 것과 시간의 정지의 역설과 관련된다. 제논은 시간에 관한 논의를 '화살의 역설'로 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