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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래불거(不來不去)의 논증

k지니 2021. 8. 8. 09:04

과거와 현재의 쌍방향의 생성적 차이성은 과거와 현재를 지속하는 동일자를 배제한 결과이다. 이 불연속성은 과거에서 현재로의 불연속[不來] 뿐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의 흐름도 단절[不去]한다. 승조는 "과거사물[往物]이 현재로 오지 않는다면 현재 사물이 과거로 흘러간다[往]고 말함"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나가버린 과거의 사물은 현재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 현재의 사물이 과거로 흘러갔다고 한다면,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오지 않는데, 현재의 사물은 어디로 갔느냐는 말이다. 승조는 이것이 오류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승조는 '과거 사물'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석물(昔物)'을 대신해서 '왕물(往物)'로 바꾸어 사용한다. 과거를 '왕(往:흘러가 버린 것)'으로 표현하는 한문의 언어습관에 의해서 현재에서 과거로의 흘러간다는 무반성적 인식이 성립함을 비판적으로 의식한 것이다.

승조의 불래불거(不來不去)의 논증에 들어가기 전에 논의의 편의를 위해 운동 개념을 정리해보자. 운동(動)은 두 가지 범주가 있다. 생성자적 범주의 운동과 생성성적 범주의 운동이다. 생성자적 범주에서 동(動)은 정(靜)과 상대된다. 생성자는 운동하거나 정지한다. 그러나 생성성적 범주에서 운동은 생성 자체인 운동이다. 생성성적 범주에서는 생성자적 운동은 부정된다. 생성자는 생멸하지만 생성 자체는 생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조가 운동을 부정하는 의도는 생성성적 운동을 부정한 게 아니고 생성자적 운동을 부정한 것이다. 생성자의 거래(去來)를 부정함으로서 오히려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생성의 역동성을 드러내려 한다. 생성성의 역동성 속에서는 생성자의 동정(動靜)이 상즉(相卽)한다. 승조가 아래에서 보여주는 불거불래(不來不去)의 논리는 표면적으로 생성자적 범주의 운동을 부정함으로서 '정지'를 말하려 하지만 궁극적으로 생성의 역동성 그 자체의 부동을 말하려는 전략으로 파악될 수 있다. 결국 생성성의 범주에서 동정은 일여하다.

승조가 정지의 주장을 과거와 현재간의 쌍방향의 불연속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자. 즉 다음과 같이 불래불거(不來不去)의 논리로서 논증한다. 기호는 분석을 위해 붙였다. "ⓐ 과거사물을 과거에서 구해보면 과거에 없지 않다. ⓑ 과거사물을 현재에서 구해보면 현재에는 있지 않다. ⓑ-1 현재에 있지 않기에 (과거) 사물이 (현재로) 오지 않음[不來]이 분명하다. ⓐ-1 과거에 없지 않기 때문에 (현재) 사물이 (과거로) 흘러간 것이 아님[不去]을 알 수 있다. ⓒ 다시 현재에서 구하면 현재도 역시 (과거로) 가지 않는다. ⓐ-2 즉 과거사물은 그대로 과거에 있으므로 현재로부터 과거에 이르지 않고, ⓑ-2 현재사물은 그대로 현재에 있으므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온 것이 아니다." ⓐ계열은 불거(不去)의 논증이고 ⓑ계열은 불래(不來)의 논증이다. 또한 ⓐ, ⓑ가 과거관점을 기준으로 한 것임에 반해 ⓒ는 현재관점으로 불래불거 논증을 영략(影略)한 것이다. 영략(影略)은 축약해서 쓰는 한문문장기법의 일종이다. 두가지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설명할 때 한쪽을 생략하고 드러난 다른 한쪽에 준하여 의미가 통하게 하는 방법이다. 'ⓒ覆而求今, 今亦不往'의 문장은 '求今物於向....責今物於今(현재사물을 과거에서 구해보면...현재사물을 현재에서 구해보면..)'을 생략한 문장이다.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승조의 '감[去]'과 '옴[來]'의 용어사용의 특징이다. 과거[古]에서 현재[今]로 이행에는 래(來;오다)를 쓰고, 현재에서 과거로 이행을 나타낼 때는 거(去;가다)혹은 왕(往;가다)을 일관되게 사용한다. 지(至;이르다)를 쓸 경우는 거/래(去/來)에 중립적으로 모두 사용된다. 이는 「물불천론」의 다음 구절에서도 일관된다. 현재가 만약 과거에 이른다[至]면 과거에는 마땅이 현재가 있어야 하리라. 과거가 만약 현재에 이른다[至]면 현재에는 마땅히 과거가 있어야 하리라. 현재에는 과거가 없으므로 (과거가 현재로) 오지 않음[不來]을 알 수 있고, 과거에는 현재가 없으므로 (현재가 과거로) 가지 않음[不去]을 알 수 있다.

또한 위 논증은 'ⓐ 과거사물을 과거에서 구해보면'과 'ⓑ 과거사물을 현재에서 구해보면'의 두 경우로 나누고 있지만 보다 완전한 논증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사물을 현재에서 구해보면'과 '현재사물을 과거에서 구해보면'이라는 경우의 수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승조는 앞의 두 경우에 준해서 뒤를 간단히 처리하기 위해서 'ⓒ 다시 현재에서 구하면 현재도 역시 가지 않는다.'를 삽입하였다. 결국 ⓐ-2와 ⓑ-2에서 과거와 현재에서 상호 양방향으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과거사물은 그대로 과거에 있고, 현재 사물은 그대로 현재에 있다(昔物自在昔 今物自在今)'는 결론적 문장은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의 주장과 표면적으로 같아 보여 "과거의 사태와 현재의 사태의 완전한 단절을 주장하는 문장으로" 의혹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