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의 삼세에 대한 용수의 이의
설일체유부의 삼세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다음과 같다. "제법이 아직 작용하지 않을 때를 일컬어 '미래'라 하고, 작용하고 있을 때를 일컬어 '현재'라고 하며, 이미 작용이 소멸한 때를 일컬어 '과거'라고 하지만, 본질상으로는 어떠한 다름도 없다." 이러한 시간의 정의에는 불변적 실체와 가변적 작용의 현상으로 구분해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유부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이는 실체-속성의 사유를 시간에 적용한 발상에 다름 아니다. 즉 살아있는 실재의 흐름을 고정되고 분절적 요소로 분해하여 실체화시키고 그것에 변화하는 작용의 속성을 부가함으로써 본래의 시간의 흐름과 생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간관은 그들이 연기법에 대한 사후적 인식과도 관련된다. 유부는 연기를 해석하면서 실체적 요소들을 먼저 상정하고 그 부동의 요소들을 서로 관계시키는 것으로 연기를 이해한다. 연기의 역동적 과정에 의해서 사후적으로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비실체적이고 가립(假立)적인 요소를 이미 존재하는 실체적 요소로 간주하고 다시 이를 인과적으로 재배열하는 것으로 연기를 이해한 것이다. 이는 위에서 각천(覺天)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실유를 관계[待, apeksa]로서 설명하려는 태도에서 예증된다. 즉 관계에 의해서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것들을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 주어진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간의 상관성을 이해한 것이다.
이런 시간관에서는 진정으로 새롭게 생성하는 것은 없고 임의적으로 정의된 고정된 다르마들이 조합될 뿐이다. 결국 유부에 있어서 사물의 생성과 그 관계를 설명하는 연기는 선재하는 실체적 요소들에 덧붙여진 것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강물이 흐른다'고 말할 때 '흐른다'라는 동사적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강물'이 있다는 인식이 아니라, 강물이 실체적으로 선재하고 그 강물이 흐른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이런 식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는 논리가 출현할 법하다. 실체를 전제한 인과적 관계성으로서 시간을 바라보는 설일체유부의 시간 존재론은 용수에 의해서 비판된다.
용수가 설일체유부의 시간론에서 문제 삼는 것은 의존적 인과관계에 대한 견해다. 이는 『중론』 제19 「관시품」(觀時品 ; 시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청목(靑目 Nilanetra)의 주석에 따르면 문제로 삼는 출발점은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의존함으로써 성립한다는 관점이다. 즉 "과거의 시간이 있음에 의존[因]하여 미래나 현재의 시간이 존재하고, 현재의 시간이 있음에 의존[因]하여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존재하며 미래의 시간이 있음에 의존[因]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관점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얼핏 보면 이러한 관점은 연기의 법칙에 따른 상호 인과적 사유에 충실한 시간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수는 이러한 시간관을 논증하는 인과적 설명에 깔려있는 사유가 실체론적인 사이비 연기법인 것을 비판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이미 선재하는 각각의 실체로서 전제해 놓고 그들 간의 관계를 이어 붙이는 것이 연기법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어지는 용수의 반론적 논증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의존적 관계[因]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와 없다고 가정할 경우에서 모두 시간이 부정된다. 그러나 이는 시간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실체론적 시간관을 부정한 것이다. 칼루파하나(David J.Kalupahana)도 용수가 주장하려는 것은 시간적 현상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실체적 존재들을 전제한 상호의존적 시간과 현상을 부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용수의 논증을 통해서 살펴보자. 먼저 시간의 의존적 관계[因]를 가정할 경우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만일 과거의 시간에 의존하여 미래와 현재가 존재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응당 과거의 시간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편의상 과거와 현재만으로 설명해보자. 첫 번째 게송에서 과거에 의존해서 현재가 있다고 해서 "현재가 응당 과거 속에 존재한다"라고 결론을 곧바로 내리는 데에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된 것은 설일체유부의 실체적 시간관의 전제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가 자체의 본질[自性]을 갖는 것이고 관계성은 그 실체의 본질에는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하고 단지 부가된 것일 뿐이라는 대론자의 주장을 전제한 것이다. 만일 과거라는 시간이 그 자체의 독자적인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지나간 시간영역 안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관계성이 이러한 과거라는 자성적 실체에 부가된 것이라면 과거에 의존적으로 관계한 현재도 과거에 부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