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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無]으로부터 어떤 것도 생길 수 없다. 세계는 없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전하게 가진 채, 존재 그 자체인 채로 있게 된다. 거기에는 어떤 구분과 균열도 없는 연속된 존재 즉 일자(一者)로만 꽉 차 있게 된다. 또 연속체인 일자에는 빈 공간(진공=무)이 없으므로 무를 향한 운동도 없다. 세계는 자기동일적 존재로 가득차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부동(不動)의 일자'이다. 그리고 일자적 부동의 논리는 시간의 흐름을 부정한다. 그의 서사시가 이를 보여준다.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게 될 것도 아니라오. 왜냐하면 지금 전부 함께 하나로 연속되어 있기에. 그것의 생성은 결코 발견할 수 없으리."라며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
승조의 운동과 생성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고대 그리스부터 주류로 자리를 잡은 동일성의 사유에 기반한 존재론의 기원을 밝히고, 그에 대한 극복으로 생성적 사유의 전개를 고찰해봄으로써 승조에 접근할 수 있는 철학적 해석학의 도구를 예비하고자 한다. 서양 존재론의 출발은 변화와 생성에 대한 추방과 유죄판결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전통 속에서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E 515~445)는 일반적으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BCE 540~480)와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철학자로 평가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萬物流轉 ; panta rhei)"라고 주장하여 세계의 근본적인 성격으로서 생성(生成)을 제시했다. 생성이란 사물들의 ..
고대 그리스에서 변화를 부정한 철학의 시원은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E 515~475)이다. 그는 최초로 변증법을 통해 '부동(不動)의 일자(一者)'를 논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자(多者)'와 '운동'을 부정하였다. 그의 논증은 서구 존재론(ontology)의 출발점이 된다. 파르메니데스의 충실한 제자 제논(Zeno, BCE 495~430)은 자기 스승의 운동성 부정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이성적 귀결이 경험적 사실과 영원히 만나지 못하도록 평행(parallel)이 되게 하였다. 역설(para-doxa)이란 논리와 사실, 혹은 이성과 경험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para)을 달리는 의견(doxa)이다. 제논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은 매 순간 정지해 있으므로 목표..
붓다(Buddha, BCE 624~544)의 가르침은 2500년 동안 시대 상황과 풍토 속에서 다양한 변용을 거쳐 왔다. 그러나 그 사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변화와 생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불교의 근본 교의인 삼법인의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여기서 행(行, samskara)이란 심(心)과 물(物) 일체의 현상적 존재자를 뜻하므로 제행무상이란 현상계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를 본질로 한다는 것이 그 의미가 될 것이다. 행(行)은 연기법에 의해 생성하고 변천하는 모든 존재자 즉 유위법을 말한다. 『구사론송소』(T41, 822a10)에서는 "조작(造作)과 천류(遷流)의 두 의미를 행(行)이라고 한다. 이 의미에 따르면 색 등의 5온도 모두 '행'이라고 해야 하지만 행온에 포함된 법이 많기..
쇼펜하우어의 예술체험과 관련된 논의에 있어서는, 이념을 조망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의 예술가로 천재를 전제하고 개체의 욕망을 벗어난 무욕성을 요청한다는 면에서 현대 예술이 지향하는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배제하게 되는 한계가 지적된다. 다시 말해 예술을 이념으로의 정신적 고양이 허용되는 천재만의 전유물로 취급하고, 천재만이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감상자는 단지 수동적인 지위에서 천재의 예술성을 수용할 뿐이라는 주장은, 예술의 생산과 감상이 대중화되고 창작자와 감상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수용하기 어려운 배타적 관점으로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천재'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미학 이론에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는다. 예술가 개념 조차 퇴색하여 작..
숭고 체험에 있어서도 쇼펜하우어는 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근대 미학에서 미와 숭고를 다른 미적 경험으로 구분한 것은 버크를 중심으로 한 영국 취미론의 업적이며, 숭고에 대한 체계적 이론화는 칸트의 공로라 할 수 있지만, 쇼펜하우어는 숭고를 아름다움보다 더 고양된 주관의 정신적 체험으로 나아간다. 안성찬은 숭고의 미학에서 미학사에 미친 쇼펜하우어의 영향사적 의미를 두고, "바그너와 니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비극의 탄생'에 나타나는 니체의 숭고 개념에 그의 의지의 철학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함머마이스터(Hammermeister)는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이 이후의 실천예술계에 미친 영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예술 생산이나 그들 스스로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자로서 현존재에 대한 분석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으며, 이전 철학이 탐구하였던 주어와 술어의 일치를 규명하는 진술적 진리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의미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윤동주의 논문에서는 현존재를 통해 존재가 개현 하는 계기로서 음악을 설명하는데, 이는 쇼펜하우어가 의지의 직접적 객관화로서 설명한 음악의 의미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Mitleid'는 '동정'으로 번역되기도 하나 동정은 일반적으로 타인과 나의 경계를 구분하고 타인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담긴 맥락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의미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Mitleid는 그보다는 타인과 내가 동일한 삶의 고통의 한가운데 있음을 공감하고 자각..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은 예술을 그 자체로 철학하는 행위로 본다면 면에서 이전의 미학과는 다른 독특한 관점을 갖는데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예술을 개별 주관의 감상과 표현의 기술이 아닌 현상의 세계를 넘어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본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에서 이러한 면의 중심이 되는 개념은 '이념'이다. 변화하는 표상 세계 너머 불변의 진리를 담지하는 객관이 이념이라면, 예술을 이념에 대한 미적 관조와 재현으로 정의하는 쇼펜하우어의 예술철학에서 예술은 곧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쇼펜하우어가 이념을 조망하는 예술가를 천재에 한정지은 것도, 예술행위가 단순한 숙련과 학습에 의해 달성되는 기술 이상의 지평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와 관련하여 셰어(S..